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재통일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|| [[파일:1990년10월 2일에서 3일로넘어가는밤, 베를린에 위치한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열린 통일축제.jpg|width=90%]] || [[파일:브란덴부르크 문과 군주들.jpg|width=90%]] || || '''1990년 10월 2일에서 3일로 넘어가던 밤 베를린에 위치한 [[독일 국회의사당|연방의회 의사당]] 앞에 모인 군중들의 모습''' || '''[[브란덴부르크 문]] 앞에 설치된 장벽에 오른 베를린 시민들과 휘날리는 동독 국기의 모습''' || 사실 [[서독]]은 이 시점에 통일을 바라지 않았다. 당장 [[동독]] 정권 보전 및 장기간 분리를 통한 발전 이후의 점진적 통일 같은 건 [[서독]]이 이미 구상했던 것들이다. 그 때문에 [[동독]] 정부와의 관계를 적당히 유지하고 유화책을 펴는 한편 [[동독]] 정부가 자국 내 반대 세력의 [[서독]] 이주를 강요하는 것도 받아주었다.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서독이 급속통일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. * 당시 [[소련]] [[서기장]]이었던 [[미하일 고르바초프]]의 권력이 1990년대 초에 오면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. 1970년대에 이뤄졌어야 할 개혁을 [[글라스노스트 · 페레스트로이카|1980년대 중반부터 이루었던 데다]][* 잘나가던 브레즈네프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 이뤘다면 소련이 더 오래 존속했을 거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.] 때마침 석유 값도 거의 반값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재정적 여유가 없었던 상황에서[* 설상가상으로 1986년 [[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]] 수습으로 재정적 압박이 가해졌던 상황이기도 했다.] 튼튼한 지지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개혁을 급격히 추진한 결과 나라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인데 이 상황에서 소련이 갑자기 해체될 경우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독립 구성국들과 일일이 협상을 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. 실제로 소련은 독일이 통일된 뒤 [[소련 붕괴|불과 1년이 지나고 나서 바로 붕괴되었다]].[* 소련이라는 독일의 강력한 숙적의 몰락을 기회삼아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한 점은 [[프로이센]]의 숙적이었던 [[프랑스 제2제국]]의 몰락으로 프로이센이 통일국가인 [[독일 제국]]의 성립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. 차이점이라면 프로이센이 [[프로이센-프랑스 전쟁|무력을 통해 프랑스를 제압하여]] 독일 통일에 성공한 반면 서독은 전쟁 없이 알아서 몰락하는 소련의 상황을 기회삼아 평화적으로 독일 통일에 성공했다는 것이다.] * [[동독]] 정부의 강력한 요구. 물론 서독이 거절할 수도 있긴 했지만 동독에게는 통일이 좌절될 경우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립 및 개방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. 게다가 동독은 소련보다도 국민소득이 앞설 만큼 발전한 국가로서 당장은 국민소득이 다소 하향된다고 쳐도 외부 투자를 대규모로 유치하는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. 상기했듯 영국, 프랑스, 소련은 독일이 통일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구 전승 4개국 중 독일의 통일을 확실하게 지지하던 나라는 미국뿐이었다. 물론 이 상황에서 [[서독]]이 통일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서독인들에게도 통일은 한 나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제로 국민적인 합의가 이미 끝난 사안이었으므로 결론은 독일의 통일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